Days of Being Wild

일과 승부 사이에서

June 1, 2020

요즘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다. 농구 한 경기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내가 이렇게 빠져든 이유는, 조던의 농구 선수로서 능력이나 기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승부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승부욕, 그 승부욕으로 증명한 결과, 그리고 승부욕 때문에 조던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상황까지…

나에게 승부욕이라는 말은 조심스럽다. 마지막 ‘욕’이라는 글자 즉, 욕심을 우리나라에서는 나쁘게 보기 때문이다. 또한 승부욕 때문에 빈번히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승부욕 없이 내 기준 이상의 결과 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거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 이상의 승부욕과 그 승부욕을 뒷받침할 수 있는 피지컬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승부욕을 욕심보다 spirit과 desire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스피릿이 없는 행동은 무의미하고, 욕구는 인간에게 당연한 거니까.

그런 면에서 어릴 때 했던 축구와 게임은 나에게 승부욕을 가르쳐주었다. 축구는 어쨌든 90분 이내에 승부가 가려지며, 무승부라도 최종 성적이라는 승부에 관여한다. 게임 역시 그 게임만의 규칙 안에서 어쨌든 승부를 가리는 게 모든 게임의 유일한 목표다. 물론 요즘은 이런 플롯도 지치니까 동숲같은 게임도 나오지만.

승부는 이렇게 스포츠와 게임에서는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사무실에서는 아니다. 승부보다는 일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말 그대로 ‘직무 수행’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승부를 볼 수 없는 조직이 가장 위험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승부에 대한 스피릿과 욕구가 없다면 승부라는 판단점조차 만날 수 없다. 성공은 커녕 실패는 뚜렷한 목표와 명확한 실행이 이루어졌을 때 실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무실에서 겪는 실패는 진짜 실패보다 그냥 ‘흐지부지’ 아닌가. 그리고 흐지부지의 끝에서 대부분은 ‘이렇게 또 끝났네’라고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다.

나에게 디자인과 일이란 승부와 같다. 스포츠와 게임의 한 경기 한 경기처럼 한 페이지를 또 아이콘 하나를 디자인할 때마다 나 자신과의 승부가 시작된다. 그리고 축구 리그의 한 시즌처럼 우리 사업의 비즈니스 플랜과 진행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사업이 실패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처참하게 ‘개인적으로’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런 내 승부욕을 동료들에게도 강요해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대부분의 동료가 내 승부욕을 공감했으며, 함께 승부의 판단점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뛰었다. 하지만 단순히 직무 수행을 하려는 동료도 있었고, 내 승부욕 때문에 상처받은 동료도 있었다. 또한 친구 한 명은 왜 그렇게 자신과 동료들을 힘들게 하면서 일하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일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래서 지난 동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것인지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론은 같다. 뻔한 말처럼 인생은 한 번뿐인데, 정말 직무 수행만 하다 죽을 수는 없지 않나. 나는 가능한 많은 승부를 보면서, 가능한 한 더 많은 날을 winning day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