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of Being Wild

Product Designer (5): 디자인 잘하는 법

March 16, 2017

거두절미하고 디자인을 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페르소나, 컨셉도출, IA설계, UI/UX, 그리드, 타이포, 아이콘, 일러스트, 브랜딩, 와이어프레임, Google Material Design, Apple iOS HIG, 포토샵, 스케치, 프로토타이핑, HTML/CSS/jQuery 등 공부해야 할 방법론과 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게다가 읽어봐야 할 글도 많고 찾아다녀야 할 강의도 많다. 하지만 이런 방법론과 지식을 공부하면 정말 디자인을 잘할 수 있을까?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디자인 업무는 굉장히 주관적이며 또한, 많은 의외성이 있다. 같은 주제라도 내가 들이는 시간과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물은 크게 달라진다. 물론 앞서 나열한 방법론과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먼저 나의 주관을 통제하고 내면에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외부의 방법론과 지식을 선별하여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계속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준 세우기
대부분 디자이너는 뭔가를 그리기 전에 드리블이나 비한스 등에서 다른 디자이너의 컨셉이나 아이디어를 찾아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흔히 말하는 ‘리서치’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리서치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어떤 디자인에 감탄하여 하트를 클릭하고, 어떤 디자이너를 팔로우할지 결정한다. 반대로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는 디자인은 가볍게 스크롤 해버린다. 즉, 리서치는 동시에 ‘평가’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리서치 과정의 나의 평가를 곧바로 내가 넘어야 할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다. 내가 감탄하고 하트를 클릭한 디자인을 웃돌거나 최소한 비슷한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물론 잘하는 디자이너를 따라잡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기준을 반드시 넘어서겠다는 승부욕 정도의 감정이 필요하다. 만약 기준 이하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는 나의 기준과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또한, 그 결과물은 내가 리서치하면서 빠르게 스크롤 해버린 디자인에 속하게 된다. 반대로 기준과 싸워 기준을 넘어서고, 더 높은 새 기준을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성장은 방법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100번 디자인하기
기준을 세운 다음에는 기준과 싸우는 일만 남았는데, 뜻밖으로 간단하다. 기준을 이길 때까지 한 페이지 또는 하나의 아이콘이라도 ‘100번 디자인’해보면 된다. 100번이라니 이게 무슨 단순무식한 소리인가. 물론 단순히 노오오오력하자는 말은 아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하나의 파일을 수정하고 히스토리를 쌓으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뭔가 좀 막힌다 싶으면 즉시 Close하고 New File에서, 새로운 아트보드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이렇게 하면 지난 디자인에서 복잡하게 꼬여버린 생각을 끊을 수 있고, 편견 없이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생각을 여러 번 끊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페이지의 주제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고, 더 많은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자기계발을 위해 Daily UI Design Challenge같은 시도가 있다. 말 그대로 매일 다른 UI를 디자인하고 다른 도전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하루는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Daily보다는 Weekly 또는, Monthly 단위의 시도가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의 생각과 7일 동안의 생각은 분명 다를 것이며, 하물며 30일이라면 정말 미묘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거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여 그 주제 만큼은 확실히 끝장을 보게 된다.

그런데 계속 100번씩 많이 디자인할 필요는 없다. 흔히 뛰어난 디자이너에 대해 ‘손이 빠르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손이 빠르다는 것은 툴에 익숙하거나 단축키를 많이 쓰는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의 주제에 대해 100번 디자인하고 기준을 이기면서, 적어도 그 주제에 대해서는 ‘직관’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직관을 통해 이전에 100번 했던 디자인을 나중에는 50번, 10번, 3번, 때로는 단 1번의 시도로 완료하게 된다. 또한, 다양한 직관이 쌓일수록 일감을 받은 즉시 어떤 구조로 풀어낼지 곧바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즉, 손이 빠르다는 것은 디자인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속도의 문제다.

나의 경우 첫 회사에서 랜딩 페이지를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정말 아무리 해도 좋은 게 나오지 않더라. 나도 만족이 안 되고, 팀장에게 보여주기도 싫었다.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는 동료 직원도 있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에 주간 회의가 있었는데, 얼마나 쪽팔린 지 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게 너무 두려웠다. 심지어 퇴사까지 고려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먹고 3주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봤다. 그리고 파일이 100개 가까이 되었을 때, 겨우 봐줄 만한 시안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모멘텀이 되어 지금까지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다.

결국,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얼마나 넓고 깊은 직관을 갖느냐의 문제다. 직관은 방법론이나 다른 사람의 지식이 아닌 디자이너 개인의 내면에서 발현한다. 그리고 직관을 갖기 위해 내면에서 높은 기준을 세우고,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의 관점에서 여러 번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디자이너로 일하고 성장을 고민하면서 많은 방법론과 툴, 지식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멘탈리티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 쓰고 보니 괴상한 글 같기도 하지만, 꼭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주제라 비문이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