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제품은 작다. 물론 다양한 요소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제품도 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의 가치는 작다. 시장 점유율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고, 사용자의 규모도 작다. 지금까지 증명한 것보다 앞으로 증명해야 할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사용자의 피드백은 놀랄 만큼 다양하고, 사무실에서도 매일 크고 작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업무도 중심 잡기가 힘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하니까, 결과적으로는 여러 가지 넣고 싶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제품이 되었다. 내가 디자인해놓고도 이게 뭐하는 앱인지, 이 페이지는 왜 필요한지 나중에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 릴리즈하고 업데이트를 하면 할수록 그런 의구심이 커졌다.
전에는 페이지마다 퀄리티에 굉장히 신경을 쏟았다. 하지만 요즘 나에게 퀄리티는 안 좋게 말하면 뒷전이 되었다. 문제는 페이지마다 의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포토샵에서 뭔가 그리기 전에 의도부터 생각해야 한다. 어떤 근거에서, 또 어떤 기대로 의도하는 것인지. 다음은 그 의도를 하나의 포인트로 함축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장황하게 설명하면 잘 전달될 수 없다. 그래서 그 의도가 버튼이든 일러스트든 다른 무엇이든 하나의 포인트로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의도 자체를 많이 또는 깊게 하면 또 어려워진다. 이제 성장해야 하는 제품에서 의도가 많으면 하나도 못 잡고 가기 쉽상이다. 또 의도가 너무 깊으면 만드는 사람조차 해석하기 힘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만드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얕은 곳부터 하나씩만 잡고 가자’는 게 실무에서 목표가 되었다. 좀 더 고차원적인 것들은 회사가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과 하면 되니까…
또한, 이런 과정이 내가 팀에서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대단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말하기 전에 내가 전달하려는 의도와 그 포인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한다. 단지 시안이나 감상부터 던지는 게 아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도 이해가 쉽고, 또한 같은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좀 더 명확한 반응이나 비평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