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에서 맛은 30%’ 내가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로서 가장 닮고 싶은 백종원 선생의 말이다. 맛집이라는 평가에서 맛 자체의 지분은 30%, 나머지 70%는 분위기와 독특한 경험 등 복합적인 요소라고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재방문을 통해 ‘직접 꾸준히 경험해야만 70%가 보일 것’이라는 당부도 있었다.
나의 최애 맛집, 압구정의 한 야끼니꾸 음식점도 생각해보면 70%가 있었다. 처음에는 고기 맛이 좋아 맛집이라고 생각했지만 방문할수록 새로운 70%의 요소들이 보인다. 옆자리 손님과 꼭 붙어 앉아야 할 정도로 꼬딱지만 한 가게와 어울리지 않게 특수부위를 풍성한 코스로 내오는 구성의 아이러니. 입가가 느끼해질 때쯤 정확한 타이밍에 내오는 매실 토마토 한 방울. 당당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사장님의 천진난만한 미소. 평범한 손님 구성이 아닌, 왠지 모르게 비밀 대화나 중요한 대화가 많은 것 같은 손님 구성이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까지.
문득 디자인도 백선생의 이야기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량・정성적 분석, 디자인 시스템, 각종 법칙, 그리고 이런 포스트까지, 하여튼 뭔가 분석되고 정리된 것만을 체득하면 디자인의 맛을 낼 수 있을까? 아니, 백선생의 말처럼 30%뿐이다. 나머지 70%는 세상의 많은 서비스를 쓰고 또 써보면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배우는 수밖에 없다.
iOS의 70%
지난가을 출시된 iOS 13만 해도 여전히 새로운 게 보인다. 처음에는 확실히 크고 굵은 타이포가 눈에 들어오지만, 쓰면 쓸수록 각 엘리먼트의 미세한 배열과 정교한 밸런스가 보인다. 애니메이션도 새롭다. 애니메이션이란 게 확실히 보면 볼수록 질릴 수밖에 없는데 iOS는 정교한 댐핑값을 설정한 덕분에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 나는 회사에서 한/영/일 3가지 언어 모두 챙겨야 하는데, 언어의 관점에서도 iOS는 배울 게 많다. iOS와 같이 수없이 많은 언어를 감당해야 하는 플랫폼에서 소수점 단위로 조정된 텍스트 자간과 폰트 사이즈의 타입별 줄간격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요즘에는 눈에 안 보이는 것까지 보인다. 매일 써보는 iOS의 시스템UI와 이른바 기본앱들의 UI가 머리속에 히스토리 형태로 축적되다 보니, 마이너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정말 미세하게 바뀌는 디자인이 콘텍스트로써 어떤 의미를 강조하거나 축소했는지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디자이너가 작업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을지 또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어떤 선택지가 있었고 무슨 이유로 마지막 결정을 내렸는지 짐작하게 된다.
내가 이토록 iOS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디자인한 앱의 사용자 경험이 내 앱이 아닌 iOS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내 앱을 보기 위해 iOS의 락스크린, 언락 경험, 홈스크린, (설치 전이라면)앱스토어를 거쳐야한다. 게다가 내 앱을 매일 쓰지는 않아도 iOS는 매일 수백 번씩 쓰고 있다. iOS는 디자이너가 앱을 디자인하는 데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맛집이다. 그런데 맛집 탐방은 겨우 이제 시작이다. iOS뿐만 아니라 경쟁 서비스, 요즘 잘나가는 서비스, 컬러가 많은 서비스, 실험적인 서비스, 회원 가입이 편한 서비스, 텍스트가 많은 서비스, 인터렉티브한 서비스… 내가 찾아다녀야 할 맛집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맛이 없는 맛집은 없듯이 앞선 30%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너무 30%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머지 70%를 무심코 놓치는 게 아닌가 싶다. 매년 연말에 디자인 트렌드 분석 보고서가 쏟아진다. 읽어보면 확실히 도움 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가 분석하고 정리한 이 보고서는 디자인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iOS 13부터 시작해 지금 출시되고 사용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서비스들을 다양하게 꾸준히 써봐야지만 디자인 트렌드의 나머지 70%를 파악할 수 있다.
내 서비스의 맛은 어떤가?
여기까지 맛집 탐방에 대해 길게 글을 써내려 왔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은 자기 서비스의 맛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자기 손으로 만든 서비스를 잘 쓰지 않는 디자이너를 너무 많이 봤다.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쓰면서 정작 우리 서비스는 관심이 적고, 경쟁사들의 서비스는 관심이 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 서비스의 30%에 관해서만 얘기할 수 있을 뿐, 나머지 70%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던 사용자는 관심이 없다. 사용자에게 내 서비스는 써줄까~? 말까~?한 한가지 썸띵일 뿐이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업무를 메이킹과 형식적인 과정만으로 생각하는 순간 사용자와 전혀 다른 시선을 갖게 되어버린다. 우리 서비스의 UX역시 우리 서비스를 정말 많이 써봐야 70%를 더 알 수 있게 된다. 10년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체계, 분석, 데이터, 프로세스 등 뭔가 잘 정리된 것 같고 뭔가 멋있는 단어로 된 말들은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표현이 안 되는 그 70%에 집중하고 싶다.